비문
히닌, 에타 등의 호칭과 차별을 폐하고 이 조항 발포 후 신분과 직업을 평민과 동등하게 할 것메이지 4(1871)년 음력 8월 28일에 ‘해방령’이 발포되었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권리를 빼앗기고 빈곤에 시달렸다. 어느 순간부터 ‘해방령’은 5만일 연장되었다고들 했다.
이후 많은 이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운동을 펼쳐왔지만, 산발적일 뿐 그다지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야마토 동지회와 수평사가 조직된 것은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후였습니다. ‘동지들이여, 들고 일어나라! 자치를 공고히 하자’, ‘우리 스스로 인간의 도리를 깨닫고 인간의 존엄성을 인류 최고의 가치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돌진하자!’ 등 부락민 스스로가 그들이 처한 상황을 인식하면서 당당하게 차별에 대하여 이의제기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시아태평양 전쟁으로 인권은 무참히 짓밟혔고 이로 인해 부락해방은 점점 더 멀어졌으며, 전쟁 이후 ‘민주국가’가 들어서고 나서도 부락해방을 ‘국민의 과제, 국가의 책무’라고 명시하는 법이 제정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자그마치 137년에 해당하는 5만일이 지나 맞이한 오늘, 우리는 이 역사적인 날을 맞이했다. 이날을 맞이하여 우리는 우리 동지들과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우리 특수부락민들에게 되묻고 싶다. 지금도 우리에게 인간의 존엄을 요구하고 열정과 희망을 원하고 예찬할 의사가 있는가. 자치를 견고히 다지고 전력을 다할 용기가 있느냐고.
2008년 9월 3일은 ‘해방령’에서 5만일이 되는 날
부락해방동맹 나라현 연합회 등 차별을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
(뒷면)
건립 발기인(생략)
2008년 5월 3일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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