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네다 도미(米田富) 수첩(1924년)
전국 수평사 창립자의 한 사람인 요네다 도미는 1924년 그의 수첩에서 형평사 창립 과정과 창립자 그리고 옛 백정 신분이었던 사람에 대한 차별 사건을 기록하였다.
요네다의 기록에 의하면 형평사 조직은 전국 수평사보다 낮은 평가를 받았으며, 관헌의 단속은 같은 민족 간의 싸움을 반긴다는 이유로 관대하였다고 적혀있다. 또 옛 백정 신분이었던 한 자산가가 학교 건립을 위해 노력했으나, 정작 본인의 아이가 입학을 거부당하는 차별 사건을 계기로 강상호(姜相鎬), 장지필(張志弼) 등이 1923년 4월에 백정 해방 형평사 기성 동맹회(期成同盟会)를 창립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당시 서울에 있던 오이타 수평사의 이하라 히사시게(猪原久重)의 주소와 1923년 9월에 일어난 형평사 습격 사건(제천 사건)과 이후 분열 과정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장지필이 일본 메이지대학 출신이라는 점과, 전국 수평사와 연대를 시도하려고 1924년 9월에 일본으로 건너온 김경삼(金慶三)의 이름도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요네다 도미의 형평사에 대한 깊은 관심이 전국 수평사와 형평사의 교류와 연대의 주춧돌이 된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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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다의 기록에 의하면 형평사 조직은 전국 수평사보다 낮은 평가를 받았으며, 관헌의 단속은 같은 민족 간의 싸움을 반긴다는 이유로 관대하였다고 적혀있다. 또 옛 백정 신분이었던 한 자산가가 학교 건립을 위해 노력했으나, 정작 본인의 아이가 입학을 거부당하는 차별 사건을 계기로 강상호(姜相鎬), 장지필(張志弼) 등이 1923년 4월에 백정 해방 형평사 기성 동맹회(期成同盟会)를 창립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당시 서울에 있던 오이타 수평사의 이하라 히사시게(猪原久重)의 주소와 1923년 9월에 일어난 형평사 습격 사건(제천 사건)과 이후 분열 과정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장지필이 일본 메이지대학 출신이라는 점과, 전국 수평사와 연대를 시도하려고 1924년 9월에 일본으로 건너온 김경삼(金慶三)의 이름도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요네다 도미의 형평사에 대한 깊은 관심이 전국 수평사와 형평사의 교류와 연대의 주춧돌이 된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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