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사 박물관 현장학습 해설 ③

츠바메 진자(燕神社)

이곳은 ‘이와사키 마을’ 지명의 유래가 된 ‘바위가 돌출된 곳’으로 여기에 본래 촌락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점 등으로 보아 이와사키 마을이 형성된 장소로 여겨집니다. 이와사키 마을 주민들은 이곳에 거처를 마련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와노사키[바위가 돌출된]’ 바로 아래는 만간지가와(満願寺川)・혼마가와(本馬川)・나카카타가와(中方川)・소가가와(曽我川) 등 4개의 하천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고세시(御所市)의 동쪽에 떨어진 빗물 대다수가 이곳으로 모이는 구조입니다. 근대 이전까지 죽은 소와 말을 해체하는 일과 아교 생산에 종사했던 이와사키 마을 사람들에게는 이 풍부한 빗물이야말로 생업을 지탱해준 ‘생명의 물’이었습니다.
츠바메 진자는 1921(다이쇼 10)년 8월 29일에 건립되었습니다. 사카모토 세이치로가 남긴『회상록』에는 ‘마을에 기념이 될 만한 것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하물며 유원지조차도 없다. 기념이 될 만한 뭔가를 만들고 싶다. 잠시나마 즐겁게 지낼 수 있는 놀이터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적혀있습니다. 여기서 ‘기념’이라는 것은 1921년 8월 28일이라는 츠바메 진자 건립 날짜에서 ‘해방령’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1871(메이지 4)년 8월 28일 발표된 이른바 ‘해방령’ 50주년을 기념하여 츠바메 진자가 건립되었다는 점에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또한 『회상록』에 사당을 옮겨온 일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이 일은 그의 아내인 카즈에(数枝)의 고향 오사카 니시나리군 니시나카지마무라(大阪府西成郡西中島村, 현, 아스카)에서 구청장을 지내던 처형 나카이 도시스케(中井利助)의 알선으로 당시 폐해진 사당에 모셔진 수호신을 인수하고, 츠루다니 도키치(鶴谷藤吉)을 비롯한 츠바메회 회원들이 짐마차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츠바메회 소속 청년들은 매일 밤 이곳 츠바메 진자에 모여 다양한 사안들에 관해 토론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이따금 학습 성과를 마을 주민들 앞에서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츠바메회 회원들은 이 츠바메 진자의 광장을 ‘토론 마당’이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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