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U]

이하라 히사시게(猪原久重) 명함

요네다 도미의 수첩에는 1924년 ‘조선 경성부 고토부키쵸 25 호소카와 요네죠(細川米蔵) 내 이하라 히사사게’라 적혀 있다. 이 시기 이하라 히사시게는 현재 한국의 수도인 서울에서 거주하였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 1924년 7월 조선 형평사를 방문한 당시 시사신보 기자인 요시이 고손(吉井浩存)이 쓴 ‘형평운동을 찾아서’에 의하면 서울의 형평사 혁신동맹 의장에 취임한 장지필을 보좌했다고 알려져 있다.
1904년 오이타현에서 출생한 이하라는 후에 전국 수평사 의장에 취임한 후쿠오카현 마쓰모토 지이치로(松本治一郎)의 영향을 받아 대학을 중퇴하고 조선으로 건너갔다. 이하라는 수평사 운동과 형평사 운동에서 물러난 후, 오이타현 출신 후생 대신(장관) 가네미츠 야스오(金光康夫)의 문하생으로 들어갔으며, 능력을 인정받아 도쿄시 직원으로 근무하였다. 또 국립 고쿠분지 결핵 요양소(国立国分寺結核療養所) 이사장을 역임하였고 1951년에 사망하였다. 명함의 직함은 이러한 이하라의 발자취를 나타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하라 히사시게 명함 1매-1 앞면

이하라 히사시게 명함 1매-1 뒷면

이하라 히사시게 명함 1매-2 앞면

이하라 히사시게 명함 1매-2 뒷면

이하라 히사시게 명함 2매 세트-앞면

이하라 히사시게 명함 2매 세트-뒷면